3.1절 마라톤 발자취 | 시.군민 건강달리기 | 역대선수 | 지원업체 및 단체

3·1절 마라톤 발자취

“끈질기게 따라붙던 모리시다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격해지는 숨소리를 듣는 순간 이길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무작정 달렸어요”

1992년 8월 10일 새벽. 몬주익 메인스타디움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오겠다던 ‘어부의 아들’ 황영조(現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감독)는 그 약속을 지키며 건국 이후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하는 주인공이 됐다.

강릉명륜고 1학년 까까머리 시절 강원일보사가 주최한 3·1절 경축단축마라톤대회에서 육상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던 황영조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옹(작고)이 일장기를 달고 우승한 이래 56년만에 한국마라톤의 역사를 새롭게 장식하며 한국인의 긍지를 세계에 떨치게 된다.

황영조는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의 한 작은 어촌인 궁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근덕중 시절 사이클 선수였던 황영조는 강릉 명륜고에 진학하면서 평소 심폐기능이 뛰어나고 탁월한 지구력을 눈 여겨 보아오던 당시 체육교사였던 강희욱씨에 의해 육상과 인연을 맺게됐고 고교시절 첫 무대였던 강원일보사 주최 3·1절 경축 단축마라톤대회에서 88년과 89년에 잇따라 우승하며 육상계의 기린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3·1절 경축단축마라톤대회는 당시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경부역전경주대회의 도 대표 선발전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원도육상경기연맹은 고교선수로서 비록 경험이 부족하지만 우수선수 육성 차원에서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황영조를 대타 요원으로 기용, 출전시켰다. 이결과 페이스 메이커였던 황영조는 당시 한국마라톤의 선두주자였던 김완기, 김재룡 등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투혼을 발휘하여 육상 관계자들을 깜작 놀라게 하며 신인상과 MVP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황영조선수는 "스타조련사" 정봉수감독(작고)의 눈에 들어 코오롱에 입단, 뱃부마라톤(2위)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예고했다.

강원일보사와 강원도육상경기연맹의 우수선수 발굴이란 장기적인 안목이 훗날 올림픽마라톤 금메달을 수확하는 대어를 낚은 셈이 됐다.

황영조는 3·1절 경축단축마라톤을 통해 오늘의 자신이 있었음을 보답하고 후배양성을 위해 현재까지 자신이 수립한 기록(10㎞ 29분58초)을 경신하는 선수에서 500만원의 훈련비를 지원해 오고 있다.

올해로 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강원일보사 주최 3·1절 마라톤대회는 숱한 스타들을 배출하며 한국마라톤의 선두주자로 그 역할을 다해왔고 엘리트스포츠의 최대 목표인 올림픽마라톤의 우승자를 발굴, 탄생시키는 금자탑을 이뤄냈다.

3·1절 마라톤 대회는 지난 1960년 ‘강원마라톤 중흥’이란 기치아래 강원도육상경기연맹 주최로 탄생됐다.

3·1운동의 숭고한 뜻과 순국선열의 얼을 기리고 통일을 염원한다는 취지아래 춘천∼화천간 역전경주대회로 첫발을 내디딘 3·1절 마라톤대회는 꿈나무 발굴과 우수선수 육성이란 목표아래 3회 대회 때부터 강원일보사가 대회를 인수받아 치르기 시작했다.

5회까지 일반부에 한해 70㎞ 역전경주로 펼쳤던 이 대회는 6회 대회때 춘천댐 준공으로 80㎞로 연장됐으며 7회 대회인 66년부터 고등부가 신설됐다.

66년부터 68년까지 3년간은 춘천고가 3연패했으며 69년부터 71년까지는 춘천농고가 3연패를 차지했다.

두 학교는 이 대회를 통해 숙명적 대결을 거듭하면서 한국마라톤 첫 20분대 벽을 허문 김봉래를 비롯해 유명종, 엄태신, 나승인 등 국가대표급의 선수들을 배출했다.

1969년 10회 대회부터 중등부를 신설, 계열화를 이루면서 강원도 최대의 마라톤 축제로 탈바꿈하게 됐다.

일반·고등부는 강원일보사와 화천군청을 왕복하는 80㎞를, 중등부는 화천군청을 출발, 강원일보사 앞에 골인하는 40㎞에 걸쳐 6구간으로 나눠 실시됐다.

당시 비포장도로였던 이 구간 연변의 주민들은 마라토너 대열이 북상을 시작하면 봄소식을 안은 전령을 맞은 양 도로연변에 나와 뜨거운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선수들 역시 긴 겨울동안 동계훈련으로 다듬은 기량을 스포츠 시즌의 첫 행사로 펼쳐진 이 대회를 통해 마음껏 발휘하며 기록향상을 위한 경쟁을 펼쳐왔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선수자원의 고갈과 국내·외적으로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따른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15회 대회부터 종전 역전경주대회의 경기방식을 20㎞ 단축마라톤(중등부 10㎞)으로 변경했다.

강원일보사는 이 대회를 통해 발굴된 스타들이 중앙무대에 진출, 우수한 성적과 함께 한국마라톤을 주도하게 되자 마라톤 인구의 저변확대와 우수선수 발굴 및 육성 차원에서 14회부터 여중·여고부를, 15회부터는 여일반부, 16회부터는 남대부를 신설함으로서 명실상부한 계열화를 이루는 발전을 가져왔다.

또한 90년대 이후 체육교육 활성화 정책에 편승, 일선 학교마다 육상이 기본적으로 육성되면서 선수층이 두터워지자 강원일보사는 강원도육상경기연맹와 일선학교의 지원을 받아 매년 남·여일반부와 남대·여대, 남고A·B, 여고, 남중·여중부 등 총 9개 부별에 걸쳐 대회를 치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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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선수

3·1절 경축 역전마라톤을 통해 국내외에 명성을 떨친 선수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황영조선수를 비롯 국내 첫 20분대 벽을 허문 김봉래씨(79)를 비롯 유명종, 김동훈, 김종선, 임장환, 신원균, 박동균씨등을 손꼽게 된다.

강원육상이 낳은 선수 중 하이라이트는 61·62년부터 본 대회에 출전했던 김봉래씨와 유명종씨로 이 두 사람을 주축으로 한 김종선씨 등 5,6명이 60년대 마라톤 강원을 빛내던 주요멤버였다.

마라톤 등용의 관문인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선수들은 62년 박동균, 65년에 유명종 이상운(당시 재미교포) 주형걸 등이었고 65년에는 김봉래 참가, 한국최초의 2시간 19분4초 기록을 세워 그토록 어려운 20분 벽을 깨는데 성공했다.

김봉래·유명종 두 사람은 66년 보스톤 마라톤대회에 출전, 김봉래가 10위(2시간 24분 17초) 유명종이 12위(2시간 27분 37초)를 차지했다.

김봉래는 이밖에 66년 멕시코전지훈련, 방콕의 아시아마라톤(4위), 68년 멕시코대회(35위) 등 화려한 해외원정 경력을 가졌는데 김은 64·65년 경부역전마라톤대회에서 유명종, 김동훈, 백승현, 정기용, 이인규, 김종선 등과 팀을 이뤄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유명종은 67년 동아마라톤에서 우승했다. 박동균은 3·1절 마라톤대회에 59년부터 연6회 출전, 매년 단체우승의 주역이 됐으며 62년부터 5년간 전국체전 도대표로 출전, 강원육상을 빛내고 66년 경부역전마라톤에선 4개 구간상을 휩쓸어 주목을 받았다

김봉래 임장환 등과 함께 3총사로 불렸던 김종선은 66년 동아마라톤2위, 임장환은 49회 전국제전 1만㎞경기에서 2위, 68년 조선일보 주최 한국마라톤 세계제패기념 단축마라톤에서 3위에 입상했다.

강원마라톤의 이정표를 세우며 한국마라톤의 주역들을 발굴해낸 춘천∼화천간 역전경주는 제15회 대회(74년)때부터 단체팀 구성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신인들에게 등용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단축마라톤대회로 변경됐다.

60년대의 역전경주가 3·1절 마라톤대회의 전통을 구축했다면 15회 이후 단축마라톤대회는 기록단축과 육상인구 저변확대를 본격적으로 이루는 전환점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강원일보사앞을 출발, 신북면 샘밭간을 잇는 20㎞ 단축마라톤대회의 첫해인 74년 당시 춘천농공고 신현섭이 일반부를 제친 1시간07분35초를 시발로 기록 단축도전에 나섰다.

고등부에 처녀 출전한 최경렬이 1시간8분34초를 기록, 먼 훗날 대성 가능성을 보였다.

이듬해인 75년에 우승으로 강원마라톤 족보에 이름을 올린 최선근(現 강원도청 감독, 강원도육상연맹 회장)이 제56회 전국체전에서 2시간27분36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김봉래 유명종의 영광을 재현했다.

이때부터 또다시 한국마라톤계에는 3·1절 단축마라톤대회를 거친 강원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77년 31회 조일마라톤에서 신현섭이 우승한데 이어 82년 제60회 동아마라톤에선 한림대마라톤 창단 맴버였던 임정태가 2시간15분18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고 92년 제41회 일본벳부마라톤에서 황영조(2시간8분47초)가 전통을 이어갔다.

이들 선수들은 한결같이 3·1절 경축단축마라톤에서 대기록을 수립하며 일찍부터 가능성을 보였다.

신현섭 최경렬에 이어 등장한 임정태는 86년 남대부에서 1시간01분47초를 기록, 현재까지 최고기록으로 남아있고 황영조도 89년 고등부 10㎞에서 강원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30분대(29분58초) 벽을 깨 일찌감치 수퍼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단축마라톤은 대회 초창기만해도 7개 단체팀이 출전했으나 18회 대회부터는 일선 학교에서 많은 선수들이 출전, 그 규모는 날로 늘어갔다.

80년 들어 출전선수가 100명을 넘어섰으며 82년부터는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개최와 함께 마라톤상비군 발족에 따른 활성화 열기의 확산으로 300여명의 선수가 출전, 기록과 규모면에서 가히 국제대회를 방불케 했다.

이 기간에 배출된 국가대표로는 82년도에 고등부 20㎞에서 1시간3분5초로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박병배와 90년 북경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김봉유, 경호·경부역전경주의 스타인 김기복·최돈정·박재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라톤 대들보들이 탄생했다.

특히 김기복(횡성출신)은 황영조의 1년 선배로 당시 국내에서 펼쳐진 대회 전반에 걸쳐 정상을 휩쓸어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황영조는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이후 우승소감을 피력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바로 김기복 선배였다”며 “만약에 몬주익때 김선배가 있었더라면 우승을 자신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기복은 한전소속 당시 군복무를 빨리 끝마치기 위해 국군체육부대 입대를 포기하고 방위근무를 선택함으로써 운동량 부족과 함께 체력관리에 실패하는 바람에 웅대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야인이 되고 말았다.

3·1절 단축마라톤대회는 당시 전국 최고의 행사로 치러지고 있던 경부역전마라톤대회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강원도육상경기연맹은 3·1절 단축마라톤대회를 통해 경부역전경주대회에 출전할 도대표선수들을 선발했으며 매년 상위권에 입상함으로서 강원마라톤의 자존심을 구가해왔다.

황영조 이후 3·1절 단축마라톤 출신으로서 알려진 선수로는 이봉주와 함께 한국마라톤을 대표했던 김이용을 꼽을 수 있다.

한때 올림픽 우승후보로까지 지목됐던 김이용은 매번 중요한 시합을 남겨놓고 부상을 당하는 불운으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해 현재는 "물건너간 선수"로 각인돼 왔으나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감독을 맡아 후배양성에 노력하고 있는 황영조선수의 지도로 2004년도에 열린 전국체전에서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며 또다시 재기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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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민 건강달리기 대회

강원일보사가 3·1절 독립정신과 순국선열의 얼을 기리고 시민체위향상을 위해 주최한 시민건강달리기대회는 1999년 춘천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닻을 올리게 됐다.

해마다 3·1절 단축마라톤대회를 통해 강원육상발전과 우수선수육성 및 꿈나무발굴을 위해 노력해온 강원일보사는 당시 마라톤을 통해 건강을 다지려는 매니아들의 열기가 확산되고 있던 점을 감안, 단축마라톤과 생활체육을 접목시킬 경우 시민 화합은 물론 축제의 한마당을 연출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아래 춘천을 시범적으로 시민건강달리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대회에는 강원도지사 도의회의장 강원도교육감 강원지방경찰청장 대학총장 등 도단위 기관·단체장과 유관기관·기업체·여성단체·군인·경찰·학생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계각층에서 1,000여명에 가까운 마라토너들이 참가, 성황리에 대회를 마쳤다. 장안의 화제거리로 부각됐다.

특히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가지 한복판을 관통하는 코스를 선택함으로서 그 동안 건강증진을 위해 춘천 종합운동장과 공지천 호숫가를 돌던 시민들에게 비쳐진 3·1절 시민건강달리기대회는 색다른 경험이면서도 오랫동안 세인들로부터 화제거리가 됐다.

5세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봄기운 속에 활짝 웃으며 달리는 모습은 뛰는 사람들이나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희망찬 미래를 보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높은 호응도가 인근까지 전해지면서 각 시·군에 달리기 붐을 부채질했고 강원일보사는 다음해에 7개 시 지역으로 확대,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강원일보사는 춘천에서만 2,800명을 비롯 7개 시 지역에서 1만 5,000여명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일제히 달리는 모습을 곳곳에서 생생하게 취재, 보도함으로서 달리기를 통한 건강관리의 욕구를 더욱 증대시켰다.

또 대회전에는 참여의욕을 높이기 위해 본지 체육면을 통해 각급 기관·단체는 물론 기업체 유관기관 여성계 클럽 등 각 마라톤 동호회를 순차적으로 탐방하며 매니아들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소개함으로서 동호회 조직 결성을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도 했다.

강원일보사는 다음해인 2001년에 18개 시·군 전 도민이‘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함께 달리는 축제의 한마당을 연출시킴으로서 단일대회로는 유일하게 3만명이 넘는 전국 최고의 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 어느 지역에서도 해내지 못했던 도 단위 행정구역내 모든 시·군에서 마라톤을 통해 순국선열의 얼을 기리고 화합을 다지는 장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마라톤을 통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의 동기를 부여한 3·1절 시민건강달리기대회는 2001년은 고성 산불의 피해를 되새기며 ‘산불조심’캠페인을 펼쳤고, 2002년과 2003년은 온 국민의 염원이었던 ‘2010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분위기를 주도했다.

이렇듯 해마다 강원발전을 위한 이슈와 시대의 요구에 맞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도민들의 염원을 하나로 묶어감으로서 애향심과 가족애를 더욱 두텁게 하는 전국 최고의 시민달리기대회로 발전해가고 있다.

또 각 시·군의 기관·단체와 기업체 지역유지 체육계 등 각계 각층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참가자들에게 나눠달라며 선물들을 보내주는 따듯한 도움에 힘입어 골인지점에서 펼쳐지는 시상식 때에는 항상 흐뭇한 장면이 연출됐으며 한편으로는 참가 열기를 북돋워 주는 원동력이 됐다.

또 각 지역에서는 성공개최를 위해 새마을어머니회와 적십자사부녀봉사단을 비롯해 인라인스케이트 동호회·사이클동호회·농악대·대학교동아리 등이 도우미로 나서 안전하고 쾌적한 달리기대회가 될 수 있도록 헌신했다.

3·1절 시민건강달리기대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도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게되자 18개 시·군에서는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민속축제와 연계, 대회를 준비함으로서 명실상부한 도민화합의 장을 연출했다.

강원일보사는 2005년도 제6회 건강달리기대회를 준비하면서 육상경기연맹과 마라톤매니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전국대회의 규모로 확대시키기 위해 지역을 순회하며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마라톤매니아들로부터 △ 칩을 사용하지 않는데 따른 기록성이 없는 대회 △ 전국을 대상으로 한 홍보 부족 △ 선수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등의 대회운영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강원일보사는 이 같은 마라톤매니아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회의 규모와 질을 높인다는 계획아래 2004년 대회부터 새로운 방식을 채택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2004년부터 춘천을 시범적으로 10㎞와 하프마라톤코스를 신설하고 조선·동아일보 마라톤대회 처럼 넷 타임(Net Time) 기록방식(칩)을 도입함으로서 참가자 개개인마다 자신을 기록을 측정할 수 있도록 했으며 대회 후에는 기록증을 만들어 전달키로 했다.

또 이 같은 시스템에 따라 참가비를 인상하는 대신 참가자에게 지급되는 기념품도 좋은 제품을 선정, 배부키로 했다.

이외 원주 강릉 등 17개 시·군은 현행대로 대회를 치르고 춘천 원주 강릉을 모델로 추후 경기방식을 결정할 계획이다.

강원일보사는 2005년 창간 60주년을 기념하고 '광복60년 분단60년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5년 11월13일 고성군 송지호해수욕장을 출발, 통일전망대까지 37.7km를 이어달리는 전국마라톤클럽대항 역전경주대회를 신설, 성황리에 대회를 마쳤다. 또한 2006년 12월3일 DMZ 통일역전마라톤대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통일에 대한 의지를 고취시켰다.

이로써 강원일보사는 3.1절 단축마라톤 대회 및 시민건강달리기대회와 4월 셋째주에 개최되는 함기용세계제패기념 호반마라톤 대회, DMZ통일역전마라톤대회등 3개의 전국단위대회를 개최함으로써명실상부한 마라톤 등용문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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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최 : 강원일보사

 · 주  관 : 강원도육상연맹

 · 협  찬 : 하이원리조트

 · 후  원 : 강원도, 강원도교육청, 강원지방경찰청, 18개 시.군, 시·군 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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